김여사와 186번, 그리고 보이스 피싱
박병훈 광주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역사를 반복해서 경험한다. 역사의 교훈이 될 만한 두 가지 대비되는 국제적인 뉴스가 흥미롭다. 수 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그리스의 구제금융과 관련된 소식과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정반대의 감정 샘을 자극한다.
그리스가 트로이카 구제금융을 반대해 생긴 국가부도 사태는 전세계의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 원인을 두고도 논란이 한창이다. 그리스 국민들의 과도한 복지놀음에 기인한 것인지 트로이카 체제의 과도한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감정이나 치밀한 국가전략의 일환인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 정치권과 국민들이 그 동안 여러 차례 구제금융을 경험하고도 교훈을 얻거나 학습의 기회로 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시간 거리 안에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 끔직한 고통의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IMF 총재가 인정할 정도로 우리는 25%라는 살인적인 이자를 구제금융의 대가로 갚았다. 국민적인 금모으기 운동 등을 전개해 IMF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이 때 가장 놀란 나라가 미국과 일본, EU국가였다고 한다. 한국을 완전한 자본종속 상태로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달 미국에서는 충격적인 사건 가운데에서도 감동적인 일이 있었다. 한 교회에서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클레멘터 핀크니 목사 등 9명이 교회 내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했다. 로드니 킹 사건 등 미국 내에서의 흑인이나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작은 불꽃에서 출발해 큰 감동으로 이어진 것은 유가족과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 준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 때문이다.
가해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 속에서도 희생자 가족들이 범인을 용서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한 일은 경이로웠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9명의 장례예식장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터 농장에서 벌어진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와 자세였다. 그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노예제의 유산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과거로부터 이어져 우리 유전자의 일부로 나타났다." 이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비극은 사랑으로 승화됐다. 장례식장을 넘어 그 감동은 미국전역으로, 세계로 전파됐다. 인종 갈등으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고도 지나 온 역사를 통해 그리스처럼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김여사로 지칭된 여성들은 비상식적이고 개념없는 사람들이라는 일반적인 통칭이다. 김여사에도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다양한 김여사가 있을 것이다.
편을 가르면서 비난하는 것은 매우 쉽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도, 메르스 사태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는데 실패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세월호'라는 단일 사건에 그쳐서는 안된다.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희생되고 아직도 9명이 실종상태라는 사실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295명 가족과 그 친척들과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이자 아픔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 가족과 친척의 아픔은 내 아픔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의 해결이 시작되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도 186번의 환자 발생을 끝으로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186명의 환자가 발생해 36여명이 사망한 하나의 유행병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사건이 아니라 186명의 가족과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의료진과 이로 인해 상처받고 차별받으면서 이사까지 한 186명의 가족에게 일생일대의 지울 수 없는 큰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마음에 정부에 대한 불신을 심어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남아야 한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보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먼저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는 처방이 이루지고 있다. 그 다음 가해자와 피해자를 철저하게 가른다.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희화화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시민의식의 실종을 보여 준다. 다른 한 가지는 차별과 편견이다. 이런 이면에는 비인간화와 비상식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의 비인간화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시키는 인격장애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름 사람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죄책감을 분산시키려는 시도이다.
이제 찌르고 가르는 지도자는 지겹다. 너무 많이 봐 왔다. 꿈과 희망과 기대를 심어주는 리더십이 그립다. 갈라지고 찔린 경험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한 결정이 내일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방향과 후손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최근 더욱 절실하게 다가 온 성찰이다.
김옥조 okjo@gwangnam.co.kr